가격이 아닌 품질로 평가 받는 안전시장 만들어야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분야의 발전은 정부가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기업의 자율적 의지보다는 정부가 법규와 규제에 입각한 재해예방정책을 지속 추진하여 성장을 이끌어왔다. 물론 정부 혼자만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다. 안전보건공단과 민간재해예방기관, 관련 학계 등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고 많은 기업들도 안전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결실을 거둘 수 있었지만 산재 은폐, 위험의 외주화, 재래형 재해의 다발 등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점에서 보듯,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진국형 자율안전관리체계를 산업현장 전반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정부와 안전보건공단, 민간재해예방기관의 ‘조화’와 ‘협력’이다. 안전보건 관련기관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 각자 맡은 바 임무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장의 최일선과 맞닿아 있는 민간재해예방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민간재해예방기관이 책임감 있고 질적으로 우수한 재해예방활동에 나서야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이런 기대를 품기에 적절하지 않다. 산업안전보건시장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일정 인적·물적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재해예방기관으로써 시장에 진입을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공급은 점점 과잉으로 치닫고 있지만 안전보건관리의 전문성, 서비스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산업의 급속한 발전을 감안하면, 퇴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이는 질 보다는 가격만을 우선시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사실을 인지, 민간재해예방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평가시스템 등을 도입하여 부실기관의 난립 및 안전보건서비스의 질 저하 등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수요자인 기업들 대다수가 민간재해예방기관의 선택 기준으로 여전히 가격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오히려 투자를 통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민간재해예방기관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역효과가 발생 될 수 있다.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내외 환경이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조선경기의 침체로 시작된 경기불황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데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불안한 여건 속에 기업의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계속적으로 줄고 결국 재해예방을 위한 비용이 경비라는 인식이 가속화 될 것이다. 또 이는 전문성, 기술력, 서비스 수준 보다는 단지 가격만으로 민간재해예방기관을 선택하는 잘못된 문화를 고착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현 상황을 방관하면 지금껏 공들여 쌓은 성과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부 주도의 한계를 넘어 항구적인 자율안전관리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민간재해예방기관이 전면에 서서 당당히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부의 통제 없이도 안전문화가 활성화되고, 양질의 재해예방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이제 정부가 토대를 다져야 한다.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법적, 제도적 정비를 통해 경쟁력 있는 민간재해예방기관을 육성해야 한다. 그것이 현 시점에서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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