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되, 법으로 안전기준이 정해지면 반드시 지켜야

작년 10월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가공육이 암을 일으킨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어 담배, 석면과 같은 1군 발암물질로 포함시켰다”고 발표했다. 또 “가공육을 하루 50g씩 1년간 매일 먹으면 대장암 발생 확률이 18% 증가한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가공육에는 고기의 색깔을 선명하게 하고 세균이 번식하지 않게 하는 아질산나트륨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암을 유발한다는 게 국제암연구소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이유였다.

국제암연구소의 발표 직후, 전 세계적으로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의 판매량이 급감했고 육류 업체들은 강력 반발했다. ‘스팸’ 등을 판매하는 육가공 기업 호멜 푸드는 “WHO가 단백질 등 중요한 영양소를 지닌 고기의 장점은 무시했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고, 북미육류협회(NAMI)는 “특정 결과를 내려고 자료를 곡해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WHO는 “육식을 완전히 그만두란 의미는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WHO 대변인은 “최근 발표한 IARC의 보고서는 가공육 섭취를 중단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줄이면 대장·직장암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이 보고서는 발암 위험을 낮추려면 가공육을 적당히 섭취하라는 WHO의 기존 권고를 재확인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국제암연구소가 밝힌 “가공육을 하루 50g씩 1년간 매일 먹으면 대장암 발생 확률이 18% 증가한다”는 내용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내용의 취지를 판단함에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준치 위험도’가 빠져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12년 암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평생 동안 대장암에 걸릴 확률은 약 5%다. 어떤 사람이 가공육을 하루 50g씩 1년간 매일 먹었고, 대장암 발병확률이 18% 증가했다면 평생 동안 대장암 발병확률은 약 5.9%가 된다. 즉 5%가 5.9%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수치변화를 가지고 암 발생 가능성이 크게 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부연자료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암’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만 너무 부각되다보니, 사회적으로 불신이 조장됐고 그 와중에 대형마트 등이 너도나도 가공육 할인 행사를 하는 등 호들갑을 떨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지난 지금은 논란이 대부분 잦아들었지만, 당시 사태가 ‘기준을 제시하는 관점’과 ‘그 기준을 지키는 관점’은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준을 제시하는 쪽은 다양한 실험결과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절대성을 주장한다. 국제암연구소 입장에서는 아질산나트륨이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이를 함유한 가공육은 엄연히 발암물질이며, 그렇게 발표하는 것은 맞다.

반면 기준을 지키는 관점은 종래의 습관과 관행을 무시할 수 없다. 가공육을 생산하는 업체나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여태껏 아무 문제없이 생산되고 유통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런 발표를 하느냐고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충돌은 산업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특히 안전기준을 둘러싸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을 지도하는 쪽과 그 지도를 수용하는 쪽이 공존함에 따라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도하는 쪽은 위험을 줄이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기준이므로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수용하는 쪽은 “흡연의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흡연자들이 흡연을 하듯이 위험에 대한 예방조치나 안전수칙 준수도 선택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안전부분에 있어 이 같은 수용자측의 주장은 어불성설과 다름없다. 안전과 관련한 관점의 차이는 분명 가공육 논란과는 다르다. 가공육은 위험도를 따지고 개인이 그 수용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안전은 그렇지 않다.

안전기준도 법으로 정해지기 전에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으로 정해진 다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보호구의 착용과 안전시설의 설치는 기준치 위험도를 근거로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안전은 선택이 아닌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병신년 새해, ‘안전은 우리의 권리’라는 관점이 산업현장에 퍼져나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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