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불러오는 원인을 꼽으라고 하면, ‘갑을구조’와 이로 인한 ‘안전불감증’을 빼놓을 수 없다.

뿌리 깊은 유교문화에 기인해 국내 산업현장에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깊게 배어있다. 상급자의 지시를 하급자가 쉽게 거역을 하지 못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안전분야에서도 적용되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상급자가 경험을 앞세워 하급자에게 안전규정을 무시하라고 해도 하급자는 이를 반대하지 못한다. 이른 바 강력한 갑과 을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일례로 업종 특성상 위계질서가 강한 중공업의 경우 중요한 공정 및 절차를 실무자들끼리 간략화하거나 생략을 하고도, 오히려 시간절약과 작업의 효율성을 얻었다는 고참 실무자의 선도 아래 안전불감증이 확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때 하급자가 “절차를 생략하면 위험하지 않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일찍 퇴근하기 싫으냐?”,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 등의 핀잔이 돌아오기에 대부분의 하급자가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갑을구조가 고착화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 싫어하는 상급자가 조직 내에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험을 가진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착각을 하고 하급자는 물론 안전전문가의 의견도 무시하기 일쑤다. 안전 규정을 어기더라도 즉각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다보니, 몇 개월 혹은 몇 년씩 안전규정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오판을 한다. 이것이 바로 ‘안전불감증’에 빠지는 대표적인 경로다.

안전불감증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염병이라 해도 백신이 있다면 미리 예방할 수 있지만, 안전불감증은 백신이 없기에 한 번의 실수로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철도분야에서 차륜의 테이핑을 조심하라고 했더니 “에이 뭐 괜찮기만 한데”하면서 조치를 미루다 큰 사고가 난 경우도 있고, 항공업계에서는 기장이 권위적으로 행동하면서 부기장과 항공관제사의 말을 무시하고 이륙하다가 다른 항공기와 충돌해 항공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부른 일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는 흔히 발생하고 있다. 땅에 떨어진 것을 제때 치우지 않았다가 밟고 넘어져 다친다거나, 항상 해 온 일이어서 대충대충 하다가 다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처한 상황이 달라 피해의 규모가 다를 뿐이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은 그 우열을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전거 운전자가 운전 중 스마트폰을 하다가 넘어짐 사고를 발생시키면 그 피해가 본인에 국한되지만, 버스운전기사가 같은 이유로 전도사고를 발생시키면 본인은 물론 수십명의 승객 목숨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정도 쯤이야’, ‘설마’하는 등의 안전불감증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현재 ‘안전불감증’은 본인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생활 속 깊숙이 침투해 있다. 자신이 갑의 역할에 취해 안전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안전의 우열을 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반성해야 한다. 일반 국민부터 기업과 정부에 이르기까지 자신부터 변해야 잘못된 갑을구조를 혁파하고 이 땅에서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을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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