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6일 대한민국은 너무도 가슴 아픈 사고를 겪었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학생 등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것이다. 이 사고로 295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으며, 국민 모두의 마음에 ‘세월호 참사’라는 슬픈 단어가 각인됐다.

잊고 싶어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 참사가 발생한 지 겨우 1년여 만에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거대한 위기와 마주했다. 바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다. 올해 5월 20일 최초 환자가 발생한 이후 7월 28일 정부의 사실상 종식선언이 있기까지 69일 동안 온 국민이 감염 우려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경제와 문화·여가, 학교생활 등 사회 전반에 끼친 악영향도 상당했다.

이들 참사와 사태는 우리사회에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가장 명백한 교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위험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다가온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것을 지목하고 싶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우리는 “평소 미세한 위험의 가능성에도 촉각을 세우는 것이 안전의 기본”이라는 말을 항상 한다. 이는 곧 세월호 참사가 남긴 교훈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한 듯하다. 메르스 사태 때 경계태세를 갖추는 것부터 실패했다. 위기에 따른 국가적 역량을 적시에 집중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또한, 책임감과 전문성의 부재, 부처 간의 원활치 못한 호흡 등등 불과 1년 전에 보였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되풀이하며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형 참사의 재발방지를 위한 정책검토나 계획수립 및 실천계획이 1년으로는 일정이 너무 촉박했을까?

경제강국 대한민국 정부의 위기관리수준이 이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 정히 해법을 찾기가 그리 곤란하다면 바둑의 정수를 한 번 살펴보기를 권한다.

바둑은 검은 돌과 흰 돌을 나누어 가지고 바둑판 위에 번갈아 하나씩 두어 가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상대방과 대화도 없이 오직 돌만 손에 쥐고 오랜 시간 조용히 앉아 변화무쌍한 전략으로 치열한 승부를 겨룬다. 그리고 승부를 끝내고 나서는 어김없이 복기를 한다. 복기를 하는 이유는 결과에 이른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어느 지점, 어느 판단이 오류였는지, 승부가 갈린 결정적 패착이 어디였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서로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다음의 승리를 위해 복기는 승자는 물론 패자에게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사회는 복기를 불편해하고 꺼리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오히려 복기조차 생략하는 짧은 승부에 따른 결과 도출에 익숙해져 자신과 사회를 점점 더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다. 복기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초스피드의 삶속에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 보기를 꺼려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우물가에서 물을 마실 때조차 나뭇잎을 띄워 급하게 물을 마시는 것을 막으려 했다. 조상들의 삶의 지혜에서 보듯 조급함과 빠름, 서두름은 결국 사고로 귀결된다.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에서도 한낱 놀이에서도 신중을 기하고 되돌아보는 것을 중시한 선조들의 문화와 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보이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드러난 문제점을 다각도로 찾아내어 분석·보완해야 할 점이 있으면 필히 보완해야 한다. 이와 함께 법에는 있되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행되지 않았던 부분은 법의 강력한 집행으로 올바로 시행토록 하고, 이마저도 부족함이 있다면 이해당사자간 머리를 맞대고 복기를 해봐야 한다.

무엇이 패착이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복기문화’가 안전분야에서도 굳건히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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