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땐 건강에 좋을 것이라 당연히 생각하고 먹지 안 그래? 모르고 먹은 나만 바보지, 이제 와 홈쇼핑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 앞으로 쳐다보지 않고 안 먹으면 되지.”

가짜 백수오에 속아 분하고 억울할 법도 한데 이상스레 원망보다는 체념하는 모습이었다. 백수오 제조업체나 이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국가나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쉽사리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땅에서 한 두 번 당하는 일도 아닌데 요란하게 부산떨 필요 없다는 세상살이에 통달한 듯한 ‘삶의 지혜(?)’마저 엿보였다. 얼마 전 가짜 백수오제품을 홈쇼핑에서 구입하여 열심히 먹었던 우리 집사람 이야기이다.

이 체념의 의미가 뭘까.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에 대해 갖고 있던 일말의 믿음과 신뢰가 송두리째 사라지고 있다. 증오와 미움보다 더한 게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지금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철저한 무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개선될 조짐과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국민들은 아예 관심을 끊고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민의 먹거리 안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먹거리에 관한한 이제 국민들은 일종의 안전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오죽했으면 “모르고 먹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을까. “시중에 판매하는 먹거리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알게 되면 먹을 게 없다”는 체념에서 나온 일종의 ‘생존술’이다. 신랄하게 표현하면 잘못된 먹거리로 인한 몸 건강피해는 이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나마 알려고 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 ‘정신건강’이라도 챙기자는 생존본능이 발동하고 있다.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하고, 나아가 먹거리에 관한 한 ‘안전을 넘어 안심 확보’라는 야심찬 비전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각종 먹거리에 대한 단상은 먹거리 안전에 대해 느끼는 국민들의 체념과 좌절이 국가와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먹거리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먹거리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당위성이다.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저버려서는 안 되는 근본적 책무다.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수록 국가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기본적인 먹거리 안전의 부재가 불러오는 국민의 불신이 팽배한 현실에서 국가백년대계니, 통일이니 하는 거창한 말은 무력해질 것이다. 먹거리 안전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가 다른 어떤 일을 벌인다 한들 믿고 따를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의 예산과 인력으로 백수오 같은 파동을 사전에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관련 정부 부처의 변명은 차라리 솔직하게 들린다. 이제부터라도 기초부터 하나하나 늦더라도 다져나가야 한다. ‘먹거리 안전’같은 국가의 존립을 지탱하는 대들보를 탄탄하게 정립하지 않고서는 선진국에 진입한다 한들 그것은 곧 무너질 모래위의 성일뿐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식약처의 ‘안전 넘어 안심 확보’라는 비전이 실현 불가능한 홍보성 멘트일 뿐이라는 절망과 체념 속에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국민들의 먹거리 안전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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