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선임연구위원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연구부

한 기업의 조그만 실수로 인한 대형사고가 규제 강화와 경직 불러와
국내 안전규제보다 더 강한 내규 정해 준수하는 ‘듀폰’ 귀감으로 삼아야


지난 1년간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과 각 부처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은 규제개혁을 위해 숨가쁘게 뛰어 왔다. 그 결과 규제개혁장관회의의 현장건의, 손톱 및 가시, 규제기요틴, 경제규제 감축 등 주요 추진과제의 대부분을 완료했으며 규제정보포털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규제시스템 혁신에 진전을 가져 왔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에 대한 국민과 기업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규제개선체감지수는 121로 ‘규제가 전년도에 비해 개선되었다’고 체감한 기업이 더 많아졌다. 또 중소기업중앙회의 ‘중소기업 규제체감도 조사’에 의하면 ‘규제개선 성과가 만족스럽다’는 응답이 14.9%로 지난 연초 조사결과의 12.7% 보다 증가했다.

반면에 올해 3월 중소기업 옴부즈만에서 실시한 ‘규제 및 규제개혁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에서는 규제개혁만족도가 38점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으며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실시한 ‘2015년 규제개혁 인식조사’ 결과,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한다는 기업은 7.8%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정부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규제개혁 체감도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3000여건에 달하는 규제개선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체감도가 저조한 이유로 개혁의 초점이 수량적인 측면에 치우쳐 규제의 품질개선이 미흡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1년간의 1단계 규제개혁이 양적 규제완화였다면 향후 2단계 규제개혁은 질적 규제개선으로 전환하여 경제적 파급력이 큰 핵심분야 규제의 질적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규제개혁의 방향전환은 규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실질적인 관건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규제개혁 과정은 일반적으로 규제의 양적 철폐(deregulation)인 1단계로 시작해서, 규제의 질적 제고(reregulation)인 2단계를 거쳐, 규제의 총량적 관리(regulatory management)인 3단계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 이래 모두 정부의 규제개혁이 수량적인 정책에 치우쳐져 왔다. 이러한 수량적 정책은 가시적인 홍보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실질적인 규제개혁의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수량적인 정책에 비해 규제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질적인 정책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규제 하나하나의 타당성과 합리성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개선해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질적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이미 ‘행정규제기본법’에 상당부분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설·강화규제에 대한 규제심사제도, 규제영향분석제도를 비롯해 기존규제에 대한 종합정비제도 등 기존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더라도 상당한 규제개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선진국의 규제체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축적된 결과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규제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의 규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관건은 국민과 기업의 협력이다. 규제가 적은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 규제를 잘 지키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기업들도 윤리경영을 강화하여 자율규제로 전환하기 위한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한 기업의 조그만 실수로 인한 대형사고가 규제의 강화와 경직을 불러오고, 그 결과 모든 기업의 부담이 엄청나게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화학기업인 듀폰(DuPont)은 국내 안전규제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내규를 규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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