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테크노밸리에서 환기구 붕괴사고가 발생한지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났다.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끔직한 사고였음에도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져가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판교 환기구 붕괴사고는 그 결과가 참혹한 것도 문제지만, 사고 자체가 도저히 일어나선 안 되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월호 사고와 함께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해의 단면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판교가 어떤 도시인가. 우리나라 첨단 IT산업의 중추이자 핵심도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 한 가운데서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이는 결국 겉포장만 화려할 뿐 그 속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실토한 것과 다름없다.

이 사실은 당시 사고 원인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판교 환기구 붕괴사고는 사람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미흡한 ‘환풍구 관리기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도시철도에 설치된 환풍구는 토목으로 분류되어 10m 아래에서 반드시 꺾이게끔 설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난 판교 환풍구는 건축물로 분류되어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 때문에 지상에서 20m 아래까지 쭉 연결되어 있었다. 이 잠재적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환풍구에 안전시설이라고는 환풍구 덮개뿐이었다. 법의 규제를 안 받는 사실상 안전의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고를 계기로 환풍구 관리기준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서울시가 있다. 시는 환기구 덮개의 걸침턱·용접시공 부실로 발생한 판교환기구 추락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공공 환기구에 대한 설치 규칙을 강화하고 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공공기반시설 부속 환기구에 대한 설치·관리기준을 새로이 정립해 구조적 안전성과 기능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시의 목표다.

이에 시는 지하철·공동구·지하도상가 등을 대상으로 환풍구 설치위치와 형태에 따른 표본조사를 실시하고, 공용주차장에 대해서는 환기구 덮개의 내하중 시험과 구조 검토를 실시한다.

또한 시설 종류에 따른 표준형 환기구 설치 기준을 마련하고, 지면형·탑형 등 환기구 종류와 보도·녹지·건물부속 등 설치 위치를 고려해 새 기준을 만든다. 이와 함께 보행자 통행여부와 유지관리 용이성도 고려하여 추락방지시설 등 2중 안전장치 설치방법·대상도 선정할 계획이다. 이밖에 안전점검 주기·방법, 내구성 확인방법, 보강방법, 환기구 덮개 교체주기 등에 관한 관리기준도 신설할 방침이다.

이처럼 공공 환기구에 대한 설치·관리 기준이 새로이 마련되면 환기구의 안전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런 긍정적인 효과가 서울시에만 국한되는 것 같아 아쉽다.

서울시는 타 지자체와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을 하여, 개선·강화된 환기구 설치 기준을 서울시 뿐만 아니라 전국 시·도에 보급해야 한다. 나아가 전국에 수없이 산재되어 있는 민간 환기구에도 자연스레 보급될 수 있도록 하여 다시는 제2의 판교사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전은 나눌수록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위정자들이 필히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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