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수 서기관 국민안전처

소화기, 교통신호등 모형만 설치해도 안전의식 함양에 큰 도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무릇 인간이 생명으로 태어나 비로소 사람이 되는 나이가 세 살이고 그때 잘못된 버릇은 바꾸기 힘들다는 얘기다. 바꾸어 말하면 세 살 때 익힌 좋은 버릇은 평생을 간다.

최근 어린이놀이터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전국에서 2400여 개의 놀이터가 폐쇄되거나 철거된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안전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된 내용을 보면서 씁쓸해 짐은 무엇일까?

필자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흙더미 속 동네가 온통 놀이터였다. 그래서일까.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만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럽다. 어느 놀이터운동가의 말처럼 “어디 가서 놀란 말인가?” 라고 묻는 것이 당연하고 심히 걱정되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이 뿐일까? 아니다. 많다. 너무 많은데 오히려 조용해서 걱정이다. 왜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대안은 없는 건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국민안전처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화재는 총 4만2135건으로, 이중 25.8%인 1만861건이 생활의 터전인 주택에서 발생했다. 여기서 문제는 사고원인의 절반이 넘는 51%(2만1489건)가 ‘안전부주의’라는 점과 사고의 36.2%가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노는 시간(13시 ~ 19시 사이)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오후 시간대는 맞벌이 증가 등으로 아이들만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사전에 대처요령을 조금만 알고 있었더라도 위험을 회피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어린이 안전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놀이터의 안전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지금껏 우리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과 그 구조물로 인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 왔다.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린이 활동공간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손잡고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과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와 함께 이번 기회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안전하지 않은 놀이터를 방치하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무작정 없애버리고 보자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이참에 어린이놀이터를 안전체험학습장으로 만들어보자.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초기에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당황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이 닥쳐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어려서부터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설은 실물이 아니어도 좋다. 예컨대 소화기가 어떤 모양이고 어떻게 사용하는 정도만 인지하고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으면 된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흔들 기구 등의 놀이구조물에 안전용품 관련 그림을 넣거나 소화기 모형, 심폐소생술 모형, 교통신호등의 모형을 놀이터에 설치하도록 법제화화는 것이 좋은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연기탈출, 비상탈출, 매듭 묶기 놀이 등 안전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까지 배치하도록 하면 더욱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돈을 많이 들여 안전체험관을 크고 번듯하게 짓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접근성이라든가 유지관리비용 등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놀이터 안전학습장 시설은 언제든 부모와 손잡고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고 기존 구조물에 그림으로 표시하거나 모형물로 만들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시설물의 유지관리도 편하고 쉬울 것으로 본다. 지역 내 여성 민방위대를 활용하여 엄마의 정성으로 점검하면 된다.

좋은 버릇은 자연스럽게 익히는 최고의 학습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어른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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