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의 생산자 vs 기준의 수행자

2015년 양띠 해,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면서 멋진 계획으로 무장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대부분의 계획은 동력을 잃고 작심삼일하기 쉽다. 목표는 뛰어났으나 실천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와 애초에 그릇된 목표를 정하였기에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작심삼일의 원인이겠다.

2014년에도 여전히 많은 사고가 우리를 아프게 했으며, 이에 따른 많은 대책들도 만들어졌다.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이라는 초유의 사고로 대한민국의 재난안전을 종합 컨트롤하는 조직으로 국민안전처가 신설됐다.

이런 조직의 적극적인 활동과 각 부처에서 발표되는 청사진, 매번 발생하는 사고와 함께 수반되는 많은 대책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하여온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지속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현재까지 만들어진 기준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0일 대구의 한 도금공장에서 발생한 염소산 가스 누출사고를 보도하는 TV화면을 생각하면서 올해는 기준 지키기에 더 많은 관심을 주문하고 싶다. 이 사고는 폐수처리용 차아염소산염 탱크로리와 저장탱크를 연결하는 호스가 황산 저장탱크로 들어가는 호스로 잘못 연결되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염소가스가 유출된 사고였다.

이로 인해 근로자 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TV화면에는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 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 방진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염소가스가 유출된 곳에서는 염소가스를 차단할 수 있는 방독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데 화면에 방독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국과수 조사요원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안전관리의 많은 대책들 중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보호구의 사용에서부터 우리는 기본이 없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안전기준이 존재한다. 이러한 안전기준들은 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고 탄생했다. 산업현장의 안전기준은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근로자들은 ‘불편하다. 나에게 맞지 않다’ 등의 이유로 기준을 지키지 않고, 사업주는 시간과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를 들어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기준의 생산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준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하나의 기준이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를 규율하는 기준으로 될 때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반드시 생기므로 양방은 합의를 통해 기준을 생산해낸다. 때로는 모두에게 손해인 기준도 만들어진다. 인간존중에 대한 기준은 손익의 개념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손해사이에 불꽃 튀는 논쟁을 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고 기준으로 정해지면 논쟁에 참가한 구성원들은 그 기준을 철저하게 지킨다. 소위 말하는 선진적인 기준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 태도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0.6%수준이고, OECD국가의 산재율 평균은 2.7% 수준이다. 안전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의 산재사고 재해자는 공식통계로 연간 80만에서 100만 명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사고 재해자 수는 연간 9만 명 수준이다. 우리나라 산재는 심하게 과소평가되어 있는 왜곡된 구조 속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산재율을 더 낮추라고 하니 감추게 되고, 이 문제는 속에서 곪아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이런 통계자료가 통용되는 분위기에서 기본을 지켜내기란 어렵다. 산업재해발생이 자유롭게 보고되면, 사고의 원인도 명확하게 밝혀진다. 이렇게 밝혀진 원인들은 다시 재해를 예방하는 대책과 기준으로 만들어져 우리를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선진적인 기준 생산자의 태도를 가진 구성원들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다. 기본을 실천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자. 을미년, 올해에는 우리 모두가 선진적인 기준의 생산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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