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아 을지대학병원 산업의학과 교수

지난 6월 노사정위원회는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자는데 합의했다. 이를 위해 노사정위는 단계적 목표를 설정한 후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범국민 추진 기구를 구성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근로문화를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노사정위는 노동시간 단축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파트타임 일자리에 대한 제도적 지원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현실성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의미 있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은 연평균 근로시간 2,256시간을 기록, 14년째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같은 해 OECD 국가들의 평균 노동시간이 1,764시간이라는 점과 OECD 국가 중연평균 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심각성을 절감하게 된다.

장시간 노동과 관련한 건강문제의 경우 외국에서는 수년전부터 주요한 관심사였다. 장시간 노동은 피로도 및 직무스트레스의 증가와 관련이 있으며 이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의 이환 가능성이 높아지고 업무상 질병을 증가시킨다. 또한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작업시간은 그 자체로 위험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긴 작업시간으로 인해 위험물질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고 위험 역시 근무시간이 9시간이 넘어가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건강상의 영향뿐만 아니라 불량률 상승, 작업수행력 저하, 가족 관계 악화 등의 문제도 동반된다고 한다. 실제로 사업장 근로자와 상담을 하다보면 장시간 노동은 운동과 같은 건강증진 행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할 시간도 부족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함에도 국내에서는 장시간 노동의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주 40시간의 도입과 그 실행 실태에서 보았듯 법정 노동시간의 감소가 실제적인 노동시간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사정위 선언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 오히려 임금 수준이나 고용의 질이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국민들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인식도 큰 문제다. 몇 년 전 은행의 영업시간 단축과 관련해 쏟아져 나왔던 국민들의 비난을 생각하면 아직 한국사회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열악한 상황일수록 더욱 노동시간의 단축과 관련한 일련의 사업들이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측면을 반영해 꼭 현장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같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는 우울증의 예방, 가족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도 노동시간의 감소는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선 지금부터라도 노동시간과 건강과의 관련성을 연구하고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할 때만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적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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