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 고용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장

사업장 안전과 관련하여 선진국일수록 안전매뉴얼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뉴얼의 일부인 안전절차서를 만들어 그 절차서를 확실히 가르치고 이것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재해예방을 위한 기본이다. 개인마다 하는 방법이 다른 작업, 절차서가 없는 작업은 안전에 관한 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업장을 중심으로 작업표준서를 만들고 개정ㆍ갱신을 하면서 생산관리를 하고 있지만, 안전에 관한 이정표에 해당하는 안전절차서는 그다지 상세하지 않고 안전작업에 충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OHSAS, KOSHA 인증을 받은 사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된다.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주로 관련된 사람을 처벌하는 데 관심을 가질 뿐, 매뉴얼에는 관심이 없다. 구미ㆍ일본인은 매뉴얼을 새로 만들거나 이미 만들어진 매뉴얼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재해예방 선진국일수록 안전에 대해 그만큼 매뉴얼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매뉴얼의 작성은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많은 사업장에서는 매뉴얼이 만들어 있지 않거나 고생하여 만든 매뉴얼이라 하더라도 서류함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유지관리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매뉴얼이 만들어지자마자 사람으로 치면 사실상 식물인간의 상태가 된다. 작성하는 것 자체가 목표로 되어 있는 양상이다.

매뉴얼을 만든 후에는 매뉴얼을 한 번 더 점검하여 기본동작이 누락되어 있지는 않은지,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절차서가 없는 것은 없는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작업절차가 상세하게 되면 될수록 자기류(自己流)가 들어가는 일이 최소화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재해사례를 보면, 낮은 빈도의 작업, 유지보수작업 등에서 재해가 빈발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예들 들면, 설비 중 구동벨트나 체인의 상태가 느슨해져 있을 때 이에 대한 조정방법, 절차서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기에 의지하여 임의로 조정을 하다가 손이 협착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배관 내부를 흐르는 액체, 점성체(粘性体) 등이 배관 내에서 막혀 유동(流動)이 정지하였을 때 그 조치방법에 해당하는 절차서 없이 직감, 경험에만 의지하여 압력을 가하다가 배관의 접합부(플랜지부)가 터져 유동물이 분출하는 대형사고ㆍ재해가 발생한 경우가 있다.

하나하나의 고장ㆍ장애에 대해 경시하지 않고, 절차서가 있어야만 작업에 착수하도록 하거나 착수한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안전관리에 있어서만큼은 개인차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비정상작업에 대해서도 정상작업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매뉴얼(절차서)의 작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뉴얼을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매뉴얼에 근거한 지속적인 교육훈련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사업장에서 안전작업이 정착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매뉴얼 작성에 서투르다. 웬만한 것은 말로 끝낸다. 한마디로 이심전심의 문화에 익숙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는 선진적인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산이다. 매뉴얼이야말로 사업장 안전관리의 토대이자 안전작업의 지침서이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매뉴얼을 중시하는 작업장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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