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 前서울시민안전체험관장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표류하던 안전 의식을 일깨웠다. 국민들은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발생하면 안 된다는 안전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한 조사기관이 전국의 33~63세 엄마 100명을 조사한 결과 엄마들의 33%가 ‘자녀가 안전한 나라에서 자라길 바란다’라고 응답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민적 바람은 높지만 여전히 ‘안전사회’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비하기로 했던 ‘안전 컨트롤타워’는 국회 정쟁으로 발목이 잡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재난·안전을 총괄할 신설 부서가 출범도 못하고 있으니, 다른 정부 부처도 관련 업무를 전력으로 가동하기 힘든 상황이다.

새로 출범할 국가안전처에는 특수재난본부라는 곳이 생겨 해양·육상·항공 분야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초동 대응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국가안전처 출범이 늦춰지니 기능을 할 수 없다.

사회 곳곳의 안전 불감증도 아직은 심각한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안전사고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분야도 있다. 올 4~7월 열차 탈선·충돌사고는 8건으로 작년(3건)의 3배 가까이 된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불과 사흘 뒤인 지난 4월 19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사이판으로 가던 한 여객기는 ‘엔진 오일 필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고 메시지가 떴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비행한 것도 모자라 경고 메시지가 사라져 계속 비행했다고 국토부에 허위보고까지 했다.

5월에는 특히 크고 작은 사고가 연달아 터져 나와 온 국민이 불안에 떨었다. 2일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나 승객 249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9일에는 포항의 한 제철소에서 가스폭발로 근로자 5명이 부상을 입었다.

20일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철거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잔해가 인도를 덮쳤고, 12일에는 준공을 앞둔 오피스텔이 20도 이상 기울어지는 후진국형 사고도 발생했다.

시민들의 안전의식도 여전히 미흡하다. 올해 7월까지 무단횡단으로 사망한 사람은 서울에서만 75명으로, 지난해 사망자 수 95명을 조만간 넘길 기세다. 하지만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느슨해지면 기업의 탐욕이 재난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했지만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에 훨씬 잘 대처한다. 수없이 대피 훈련을 하고, 건물도 허리케인에 버티도록 튼튼히 짓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티는 허리케인이 한번 지나가면 쑥대밭이 된다. 평소 얼마나 잘 대비하느냐 하는 문제다. 유럽의 광산 사고는 미국보다 훨씬 드물게 발생한다.

이처럼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감독과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작은 정부 지지론자들은 ‘정부가 규제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고 비판하지만, 정부는 재난 예방을 위해 더 많은 규제와 감시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규제 관련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규제·감독도 쉬워진다.

기업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위험을 통제하는 부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효율성만을 추구해 위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9·11테러 때 피해가 컸던 것은 원래 지하에 있어야 할 연료 탱크를 건물 중간 곳곳에 설치했기 때문이다.

또 안전에 대한 국민 인식도 높여야 한다. 시민 의식 변화는 굉장히 어렵다. 단기간에 이루질 사안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안전교육을 강화하여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 우선적으로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국민이 싫어하겠지만 법이나 규정 위반에 대한 제재가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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