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오 한국안전학회 회장(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우리나라 안전 역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역이자 기계안전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인 이근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내 안전 관련 학술단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한국안전학회의 15대 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이근오 신임 회장은 행정안전부 승강기 사고조사 판정위원회 초대위원장, 노사정위원회 산업재해예방시스템 선진화위원회 위원, 서울시 안전감사 옴부즈만, 한국가스안전공사 사고조사위원회 위원 등 그간 정부와 기업, 지자체를 넘나들며 안전 분야의 성장과 발전을 주도해왔다. 또한 30여년간 강단에서 예비 안전인들을 육성하는 데에도 헌신해왔다.

이런 큰 발자취를 남긴 그가 이제는 안전분야 학자와 지식인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이에 따라 안전학회의 향후 행보에 각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근오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그만의 안전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Q. 한국안전학회 회장에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포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 관련 학회 중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28년)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안전학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허나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많은 안전인 여려분들의 기대와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2년이라는 임기 동안 우리 안전학회가 50년 나아가 100년 동안 대한민국 안전 분야에서 핵심기관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안전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기쁜 마음으로 희생하고 봉사하고자 합니다.

Q 회장님의 안전에 대한 신념이 궁금합니다.

우주의 근본은 인간이다. 즉 인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비추어보면 안전보건은 인간존중을 실현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요즘은 사회적으로 안전보건이 단순히 재해를 예방하는 차원을 넘어 사람의 인권보장적 측면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례로 근로자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한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해당 근로자 가족의 행복까지도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안전보건이 곧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핵심요소인 것이지요.

Q. 전체 산업재해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중대산업사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인이 무엇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최근 중대재해를 보면 산업단지에서 집중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면 가장 큰 원인은 기기 및 설비의 노후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요 산단 내에 있는 설비 중 대다수는 1970~80년대 산업화시기에 설치됐습니다.

30년 이상 가동된 상태이기 때문에 노후화로 인한 각종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에 작업자들의 기본안전수칙 미준수, 즉 안전불감증이 더해지면서 여전히 사고가 다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Q. 산재를 줄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재해감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의식 향상’이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설비의 안전성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도 여타 선진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허술한 상황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위험기계·기구의 경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제조단계에서 인증을 하고, 사용단계에서는 법정 안전검사를 실시합니다. 우리나라는 이 두 부분에 대해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안전인증 대상 기계기구 수가 많습니다. 무려 제조단계에서의 관리대상이 27가지이고, 안전검사는 12종에 달할 정도입니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등도 겨우 보일러, 압력용기, 크레인, 프레스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강한 규제로 관리를 하고 있음에도 사고가 다발한다면, 작업실태에서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여전히 사업장에서 편의를 위해 안전을 무시하거나, 작업자들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안전의식 향상’이야말로 수많은 제도와 규정이 발휘할 수 있는 효과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재해감소의 지름길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Q. 최근 산재 발생 법인(法人)과 사업주에 대한 법적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기업에 대한 처벌강화가 산재감소의 해법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처벌강화가 산업안전 법제도의 준수율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야 어느 정도 처벌을 감내할 수 있겠지만, 영세한 중소사업장의 경우 사고 발생시 큰 처벌을 내리면 사업장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럼 결국 기업은 산재를 은폐하는 등 불법적인 행위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즉 풍선효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맹목적인 처벌 강화보다는 적절한 처벌과 지원을 병행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잘하면 많은 인센티브를 주어 기업 스스로 안전을 강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안전의식수준이 높지 않아 사고가 다발하는 것도 있는 만큼, 국민적 안전의식 개선사업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향후 학회 운영계획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학회를 필요로 하거나 학회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다가가려 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 개정을 할 경우 입법예고를 하고, 이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이 돼야 올바른 정책이 수립, 시행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안전학회는 이러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기관들은 이권이나 유·불리가 관계되어 있지만 학술단체인 학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공정하고 정직한 전문가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또 산업안전 뿐만 아니라 원자력, 전기 등 모든 안전분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통합적으로 논의하는 거대 학술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최근 안전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 학회가 안전분야의 발전 방향과 실행 전략을 제시하는 등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기업과 연구기관 등의 다양한 안전조직과 적극적인 교류에 나서고자 합니다. 이것을 통해 안전인의 역량이 집결되고, 우수한 발전안이 지속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학술 연구용역 수행, 국제교류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여 학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견고히 구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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