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호 소방방재청장

10중 추돌사고로 하지절단의 큰 부상을 당한 이모 씨가 사고현장으로부터 헬기와 구급차로 접합수술이 가능한 병원까지 가는데 무려 5시간 22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이 씨를 태운 구급차는 사이렌을 계속 울렸지만, 앞을 가로막는 차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끼어드는 차도 있었다.

통상 하지절단 환자는 6시간 안에 접합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 씨는 부상정도가 심하고 사고 후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에 괴사가 진행돼, 결국 접합 수술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영영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연예인들의 119구조대 체험을 담은 모 방송국 예능프로 ‘심장이 뛴다’ 촬영 도중 실제 발생한 일이다.

골든타임은 화재의 초동진압과 응급환자의 소생률을 높이기 위한 시간으로 화재 또는 사고환자 발생 후 최초 5분을 말한다.

그간 도로교통법 개정과 소방차 길 터주기 홍보 등 각종 정책이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2009~2013) 소방차 출동 후 5분내 현장 도착율이 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응급환자를 위해 출동한 구급차의 현장 도착 평균시간은 9분이었고 골든타임인 5분 이내 도착율은 54.8% 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골든타임 개념을 재난현장대응에도 적용해 소방차의 5분 이내 현장 도착율을 2017년까지 74%대까지 높여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교통신호 연동·제어를 통한 소방차 우선출동시스템을 구축하고 소방관서 앞 출동전용 신호등을 설치하는 등 교통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의무 위반과 불법주차 단속 등을 강화하여 운전자들이 자율적으로 양보운전을 하고 불법주정차를 하지 않도록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통시스템 개선과 엄정한 법 집행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긴급차량에 대한 양보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사설 구급차의 무분별한 사이렌 취명과 목적 외 사용으로 인한 오남용으로 긴급차량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일선 현장의 소방관들은 화재나 응급환자의 신고를 받으면 1초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기도 하고 때로는 신호를 무시하면서 까지 곡예운전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가 화염과 극심한 고통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이 가장 좌절하는 순간이 있다. 꽉 막힌 도로에서 비좁은 틈을 헤쳐 나가는 소방차와 구급차 앞을 끼어든다거나,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 보듯 태연한 운전자들을 마주칠 때이다.

이러한 국내의 상황과는 반대로 선진 외국의 긴급차량에 대한 양보운전은 모세의 기적에 비유된다. 소방차나 구급차가 오면 운전자는 도로 가장자리로 즉시 비켜주고 이들 차량이 지나갈 때까지 정지한다.

물론, 미국 오리건 주는 양보의무 위반 시 벌금을 최고 720달러까지 부과한다. 독일, 러시아, 캐나다도 긴급차량에게 양보 불이행시 과중한 벌금부과와 면허정지까지 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이 과중한 벌금을 부과하고 운전면허를 취소하기 때문에 모세의 기적처럼 긴급차량에게 길을 비켜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웃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양보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도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긴급차량에 길 터주기는 양보가 아닌 의무이다. 누구나 10초만 잠시 멈춰서고 단 1미터씩만 비켜준다면 소방차와 구급차는 더 많은 생명을 살려낼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앞둔 선진국시대에 걸맞은 안전의식 함양과 국민들의 긴급차량 길 터주기 양보문화가 함께 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모세의 기적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