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 前서울시민안전체험관장

2007년 12월 12일 저녁 7시경 서울에 소재한 Y공연장. 그곳에선 1300여명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공연 중에는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불꽃이나 성냥불, 촛불이 종종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기도 한다. 당시 이 공연도 그랬다. 한 배우가 대본에 따라 성냥을 이용하여 불을 켜고 원고에 불을 붙여서 벽난로에 던졌다. 무대와 관람석은 차분한 가운데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헌데 잠시 후 이 고요함은 혼란의 아비규환으로 뒤바뀌었다. 벽난로에 점화하는 장면을 연출한 후 3분이 지나 불꽃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무대부에 내려져 있는 막을 태우면서 급격히 상층부로 확대되었다.

관람객들은 처음 불길이 솟아오르자 공연 중에 불타는 장면이 있는 줄 알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연기를 흡입하자 공연이 아닌 실제 상황임을 알고 서둘러 대피에 나섰다. 안내방송을 하지 않아 대기실에서 준비 중인 출연자들은 공연장이 연기로 가득차고 나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관계자들이 소화기로 진화에 나섰지만 무대범위가 넓어 실패했고 커튼 뒤에는 목재와 스티로폼 도료 등이 첨가된 소품들이 많아 화재는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그나마 다행히 무대부와 관람석을 차단하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관계자가 방화벽을 수동으로 조작하여 관람석으로 불길과 연기의 확산을 차단하여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방재실 직원이 수동으로 스프링클러설비를 작동시켰지만, 33m높이에 개방형헤드가 설치되어 있어 화재진압의 효과는 적었다.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건물 상층부에서 검은 연기가 분출되고 있었다. 대원들은 관람석으로 진입하여 방화벽 밑으로 새어나온 불꽃을 옥내소화전을 이용하여 진압하는 한편 무대부 앞쪽에 앉아있던 사람들과 공연단원 등 25명을 구조하여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다른 대원들은 무대부로 진입하여 진압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3층으로 올라가 천정으로 확대되는 불길을 저지하였다. 24분 만에 불길은 진화되었지만 4억900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한바탕 난리를 겪었지만 그 후에도 이 오페라는 무대에 오래도록 올려졌다. 다만 변화는 있었다. 한 번 불의 무서움을 경험한 배우들은 불꽃 소품을 전기조명으로 대체했다. 또 공연 관리자는 무대 곳곳에 소화기를 배치했다. 아울러 수화기만 들면 바로 가까운 소방서와 연결이 되는 직통 전화도 개설했다

뒤늦게 안전관리를 강화한 점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결국은 사고가 난 후에 실시된 것이라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즉 그 많은 대형사고를 겪었음에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곳곳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약방문 등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진짜 불을 쓰는 공연이 있다면 당연히 화재안전전문가도 대기해야 한다. 다수의 생명을 담보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폭력을 휘두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사고에 대한 대비는 산업현장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 주변, 특히 공연장 등 다중이 모이는 곳이라면 조금이라도 사고의 위험이 없는 지를 철저히 살펴야한다. 이와 함께 정부도 공연장 등이 안전관리에 소홀하지 않도록 지도·점검이나 기술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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